짧은 여행 긴여운

봄, 제주 3일. 이 숙소와 카페가 유명해지지 않았음 해

[엘렌] 2021. 1. 2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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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들리고픈 제주 숙소, 카페.

2년 전에 묵었던 숙소가 정말 좋았었다.

짧은 시간 잠시 머물렀지만, 숙소로 인해 여행의 경험이 좋은 추억이 됐기에 호스트의 두번 째 BnB가 오픈된 걸 알고 몇 개 남지 않은 빈 날짜에 맞춰 바로 예약을 했다.

후기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다녀온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얼마나 즐겁고 유의미한 시간을 만들었는지.

물리적인 공간과 도구의 퀄리티가 좋더라 나쁘더라와는 다른 얘기다.

공간의 경험과 시간을 사는 사람에겐 말이다.

이번 여행은 오롯이 쉬기 위한 계획 없는 여행이었다.

숙소에서 충분한 여유를 보내고, 놀멍 쉬멍 마음 가는대로 떠돌아다니는 쉬는 시간이다.

 

2018.03.01에 여행하고 위시빈에 썼던 여행 노트를 옮겨왔습니다.
여행 정보 보다 생각과 감정을 나열한 여행기입니다.
사진은 아이폰과 ricoh GR로 주로 촬영하였습니다.

완벽하지 않아 더 영화같은 여행길

김포 공항을 두번째로 가는 길.

예정된 계획은 오전 9시에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대충 짐을 챙기고

공항 근처까지 갔을 때.

신분증을 두고 온 걸 알게됐다.

비행기를 탑승하고 렌트하려면 신분증이 필수인데 이럴 수가.

살다 살다 이런 멍충이 같은 짓을.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와본 것 처럼 느낄 정도로

철두 철미한 여행 계획을 세워야 마음이 편하다.

그 여행 계획에 체크리스트도 필수고

신분증이나 여권 같은 항목은 당연히 처음 목록에 있다.

 

숙소에서 쉼이 주된 여행의 목적이었기에,

쓸데없는 계획 같은 건 세우지 말아야지 했다

이 사단이 났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집에 돌아와서

겨우 겨우 저녁 6시 표를 다시 구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천장을 보고 잠시 누워 있었다.

시간이 정말 안간다.

다시 캐리어 끌고 나왔다.

공항에서 기다리는게 차라리 나을 거 같아서.

 

여권 두고 공항 가는 사람

참 정신없고 희한하다 했더니

내가 완전 그짝이다.

 

헛웃음이 멈추질 않아

아직도 이게 실화인가 싶고

그렇다.

여행도 인생도,

예측할 수 없어서 영화 같다.

 

어쨌든 두번 째 들린 공항에서

무사히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바다 속 고등어 쌈밥

먼저 도착해있던 지인들이 공항에 마중나와 주었다.

고작 아침 저녁 사이인데 어찌나 반가웠는지. 

 

도착하자 마자 저녁을 먹으러 숙소 가는 길에 있는 고등어 쌈밥집을 들렸다. 

기다린 동안의 허기 때문이었나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싱싱한 고등어와 적당히 짜지도 맵지도 않은 조림 양념은 잘 어울렸다. 

밥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도, 밥을 또 비벼 먹고 싶을 정도다. 

함께 주문한 고등어 구이도 맛이 좋았다. 

공항에서 서쪽 방향으로 동선을 짠 여행자라면 추천하고픈 밥집이었다. 


호스트의 정성과 배려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애아리in귀덕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1,2층 독채 BnB.

처음 문을 열자 마자 집안은 나무향이 가득했다.

밤 늦게 도착해서 집안의 풍경은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제대로 확인 할 수 있었지만,

따뜻한 훈기가 가득한 거실과 침실은

내 집 만큼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가 묵은 2층은 욕조가 있는 침실이다.

차가 간간히 다니긴 하는데 동네가 정말 조용해서

잠들 때 일어날 때 파도 소리가 잘 들렸다.

 

침대나 침구도 호텔 이상 훌륭해서 편히 잘 잤다.

바스락 거리는 뽀송뽀송한 이불과 베게는

집으로 가져 가고 싶었다.

욕실의 수건도 호텔 못지 않게 폭신했고

좋은 햇볕 냄새가 났다.

커다란 욕조를 보니 입욕제를 가져왔다면 좋았을 걸 싶다.

 

2층 방에서 연결된 작은 옥상에는

바다를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있다.

따뜻한 아침 햇살이나 일몰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기 최적의 장소이다.

 

1층엔 욕실 달린 작은 침실과 커다란 거실이 있다.

거실엔 해변 카페 못지 않게

바다 뷰를 바라 보고 앉을 수 있는 큰 식탁과 주방이 있어

가족, 친구와 둘러 앉아 밥 먹고 차 마시며 쉼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일행도 이곳에서 맛있게 밥을 지어 먹고 티 타임을 했다.

 

아침부터 한낮까지 숙소에 머물러 보았는데

제주에 와서 어딘가를 찾아 돌아 다니지 않고

집 안에서 이렇게 조용한 시간을 보내 보는 것도

처음 인 것 같다.

 

직접 와 보지 않고 글과 사진으로

이 경험을

다 알 수 있을까.

 

숙소 정보 https://www.airbnb.co.kr/rooms/15536665?s=51


해변 카페 만큼 창문이 열일하는, 숙소 거실.

 

배려심 넘치는 일행 한분이

아침 일찍 봄날 까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왔다.

 

덕분에 아침의 부산함 없이

여유로운 티타임을 집안에서 가져본다.

이곳은 도란도란 둘러 앉아 이야기하기가 참 좋다.

누군가는 요리하고

누군가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함께 차를 마시고

사진찍고.

타로카드를 펼치기에도 테이블은

넉넉했다.

 

일행들이 숙소 근처에는 작은 편의점만 있어서

전날 마트에서 미리 장을 봐두었다하여,

내친 김에 파스타도 만들어 먹었다.

 

날씨도 점점 개어오고

창밖의 바다와 하늘에 마음이 시원하다.

 

 


사색하는 구불구불한 길, 한담해변산책로

숙소 근처에 있는 한담해변 산책로를 왔다.

곽지과물해변까지 걸을 수 있는 조용한 산책로인데

걷는 동안 파도소리 풀소리 힐링 되는 곳이어서

유명해지지 않았음 하는 곳이다.

얼마전에 효리네 민박에서 장소 소개가 되어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초입의 봄날 까페와 GD까페에만 사람들이 버글버글하고

이곳은 아직 한산하다.

 

예전에 혼자 왔을 때는 두 시간 더 걸려 걸었던 길이었는데

사람들과 함께 걸으니 왕복 40분이면 되는 짧은 거리다.

 

이곳은 바다와 꽃길 사이에서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너무 일찍 와서 피어 있는 꽃은 아직 없었다.

조금 따뜻할 때 오면 들꽃이 많이 피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 왔을 땐 꽃 사진 삼매경에 빠져

걷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던 거 같다.

그때도 생각했지만 바위의 이름들을

참 그럴싸하게 잘 갖다 붙여놨다 싶다.

 


곽지과물해변 (곽지해수욕장)

 

산책로의 끝.

여름엔 해수욕 하기 좋을 것 같다.

아직 추워서 해변가가 조용하다. 

 

 


살롱 드 라방 (Salon de Lavant)

근처에 갈만한 카페를 인스타그램으로 찾아보았다.

가면서도 자리가 없지 않을까 했는데,

도착해보니 역시나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둘러보니 야외 정원도 카페 내부도 사진 찍기 좋아보였다. 

사람들은 좋은 곳은 참 귀신 같이 잘 찾아낸다. 

평일에 제주를 오게 된다면 다시 들려보기로 한다.

 


지나다 그냥 들려 더 좋았던, 까미노

살롱드 라방에 빈자리가 없어서

지나는 길에 보았던 카페 까미노로 왔다.

마치 예술가가 만든 것 같은 공간이다.

공간이 넓어서인지 사람들이 있었지만 시끄럽지도 않았다.

음료가 나오는데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만큼 공을 들여 만드시는 것 같았다.

언뜻 보기에 바리스타가 바리스타 같지 않은(?) 풍채셨는데,

어떤 사연으로 제주에서 이런 카페를 하고 계신지

궁금하기도 했다.

 

메인 카페 옆에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곳에서는 말 없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야 입장할 수 있다.

언젠가 혼자 다시 찾게 되면

조용하게 책 한권 읽어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다시, 애아리in귀덕

조용하게 저녁을 마무리하기 위해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서쪽 모퉁이에 있는 집이어서 일몰이 아름답겠지 했는데,

정말로 집안에서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저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저녁 메뉴는 전날 봐둔 장으로 뚝딱 만든 소고기 카레.

(몇번 만든 적 없지만) 내가 만든 카레 중에

최고의 맛이었다.

 

입욕제는 없지만 따뜻한 물에 반신욕 하며 독서를 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지나간다.

 


다음에 또 들리고 싶은 맛깔나는 밥집, 애월은혜전복

이틀밤을 숙소에서 잘 쉬고 집을 나섰다.

어제 한담해변산책로를 들렸을 때 봐둔 전복식당을 찾았다. 

나는 전복돌솥비빔밥을 시켰다. 

밥도 맛있었지만 같이 나온 반찬도 좋았다. 


개님들이 반겨주는 쌀다방

비행기 시간이 이른 일행들을 공항에 내려주고,

공항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쌀다방에 왔다.

예전에 들렸을 때 오픈 시간을 확인 못해서

입구 앞에서 잠깐 얼쩡거려보았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 쌀집을 개조했다던가 그랬던거 같다. 아님 말고.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문을 열면 반겨준다.

손님들이 늘 들락거려서인지 사람을 봐도

그렇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 같다.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라는 아이스 쌀다방라떼를 주문했다.

카페 이름 처럼 곡물과 라떼를 섞은 음료라고 했는데

미숫가루 맛에 보리차 맛도 나면서 커피맛도 나고 묘했다.

맛있다.

 

토요일 낮시간이라 한참 여행지를 돌아다닐 때라 그런지

카페는 한산했다.

 

카페 창가 자리에 이름 모를 화분들과 함께

낮시간의 햇볕으로 광합성도 잘했다.


과거로 돌아간 미래 책방

카페를 찾다 지나가는 길에 보았던 책방에 들려보기로 한다.

책방 안 의자 하나 소품 까지 풍경은 과거 그대로인데

이름은 미래책방이다. 묘하다.

 

사장님이 직접 쓰고 인쇄하고 재단한 손바닥 책도 있고

구석엔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팔고 수리하는 작은 공간도 있다.

책방인데 나는 카메라 앞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다음에 제주 들릴 일이 있으면

고장나 셔터가 눌러지지 않는 롤라이를 맡겨놓고 여행할까 싶다.


효리가 아이유가 다녀갔다는 그 옷방, 모퉁이 옷장

쌀다방 옆엔 빈티지 옷가게가 있다.

저 공간 안에 진짜 사람이 들어가서

옷을 구경하고 살 수 있을까 싶은 외관이다.

안에 들어서면 한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폭이 다여서

두 사람이 서로 지나려면 한명은 벽에 꼭 붙어 서주어야 한다.

 

1층은 남자옷, 2층은 여자옷방.

2층에 오르려면 잡을데가 없어 정말 조심해야 하고

3명이 제한 인원인가 그렇다.

2층에서 옷을 고르면 1층으로 다시 내려와

구석 핏팅방에서 옷을 입어보고

건물 밖으로 나와 벽 앞의 거울 앞에서

이 옷이 어떤지 확인해봐야 한다.

치마 바지를 입어봤는데

바람이 자꾸 불어서 핏이 어떤지 알 수도 없고

지나가다 그런 내 모습을 구경하고 계신 할머니 때문에

자세히 보는게 몹시 민망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옷과 소품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내 취향은 아닌 거 같다.


사진 찍기 좋은 아날로그 감귤밭

저녁 비행기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조금 더 아랫 동네로 내려왔다.

귤이 한창일 때는 감귤 따기 체험도 할 수 있는 카페라고 한다.

음료를 먼저 주문하면 영수증을 가지고 감귤밭에 입장할 수 있다.

 

귤이 없었어도 초록 귤 나무들은 눈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색이

초록 나무를 더 초록지게 만들었다.

 

실컷 사진을 찍고 카페로 들어오면 음료를 준다.

텐저린 라떼를 마시고 싶었지만,

오전에 쌀다방에서 이미 라떼 한잔을 마셔서

그린티 라떼로 주문했다.

 

햇빛도 따뜻하고 사진 찍기 좋은 날씨다.


저녁 비행기를 탄야한다면 도두봉에서 일몰 감상을

비행기 타기 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서

공항 근처에 작은 오름이라도 오르고 싶어 찾아봤더니

도두봉 공원이 있었다.

공항에서 15분 거리에 있고 20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공원이라고 하니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 일몰 시간도 되어서 사진 찍기도 좋겠다 싶었다.

생각했던대로 공원에 올라

도두항 쪽으로 바라보는 일몰은 정말 아름다웠다.

여행의 마지막 풍경으로 담아오기 좋은 장소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비록

삼일 여행의 하루를 그냥 날려 먹었지만,

그만큼 또 얻은 것이 많은 여행이었다.

 

여행의 목적은 어차피 계획 없이 그냥 쉬고 먹고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었으니까.

 

여행도 인생 같이 계획대로 완벽할 수만은 없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했던 삼일간의 제주 여행이 이제 끝났고

또 다음 여행을 완벽하지 않게 계획할거다.

 


LNstory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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